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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의 심리학

by sunnyday15 2025.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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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의 심리학

일요일 아침, 어김없이 방은 어수선했다. 일주일 동안 입고 벗은 옷들, 택배 상자, 바닥에 굴러다니는 먼지들, 흐트러진 화장대. 한숨이 절로 나왔다. 매주 주말마다 반복되는 이 장면은 마치 내 마음 상태를 시각화해놓은 것 같았다. 사실 청소란 물리적인 정리임과 동시에 내면의 정리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게으름을 피우며 계속 미루다가도 결국 손이 가고야 만다. 오늘도 그렇게 청소를 시작했다.

 

처음엔 ‘이걸 다 언제 하지’ 싶었다. 물건 하나하나를 치울 때마다 감정이 붙어 있어 더디게 느껴졌다. 한 주 동안 무심히 벗어놓은 옷더미를 정리하면서 지난 며칠간의 피로감이 함께 쓸려 나갔다. 코트 주머니에서 영수증 하나가 나왔고, 거기엔 친구와 함께 갔던 카페의 이름이 찍혀 있었다. 그날 나눴던 대화가 잠시 스쳐 지나갔고, 그 따뜻한 공기의 잔상이 떠올랐다. 청소는 물건을 치우는 것이기도 하지만, 기억을 다시 꺼내보고 정리하는 일이기도 하다.

빨래를 돌리고, 싱크대를 닦고, 욕실 타일 틈 사이의 곰팡이를 세제로 문질렀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방치했는지, 곳곳에서 느껴졌다. 청소를 하다 보면 ‘내가 스스로를 얼마나 돌보지 못했는가’를 깨닫게 된다. 방 안의 상태가 내 상태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리창을 열어 바깥 공기를 들였다. 먼지로 가득했던 방 안에 맑은 공기가 들어오니 숨이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봄 햇살이 커튼 사이로 비치고, 바닥엔 그 햇살이 만들어낸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순식간에 공간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정돈된 공간에서 깊게 숨을 들이쉬자 마음마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오래된 물건들도 정리했다.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향초, 선물로 받았지만 잘 쓰지 않던 컵, 감정이 엉겨 붙어버린 노트들. 물건을 버릴 때마다 마음속 한 켠이 비워지는 느낌이었다. 단지 공간을 확보하는 게 아니라, 불필요한 감정과 기억을 정리하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집중해 청소하다 보니 어느새 3시간이 훌쩍 지났다.

모든 청소가 끝난 후, 정리된 방에 앉아 따뜻한 차를 한 잔 마셨다. 책상 위는 비워져 있었고, 침대 옆 협탁엔 좋아하는 향초 하나만 올려져 있었다. 방이 깨끗해지니 나 자신을 다시 돌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무너졌다고 느껴질 때마다 청소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작은 의식이자 루틴이기 때문이다.

 

청소는 단지 ‘더러움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마음속 얽혀 있는 실타래를 푸는 과정이다. 한동안 정리가 되지 않던 감정들도, 어지럽게 얽힌 생각들도 천천히 자리를 찾아간다. 그래서 나는 청소를 할 때 음악을 틀기보다는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며 하는 걸 좋아한다. 머릿속에서 ‘지금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기도 한다.

누구는 말한다. 정돈된 삶이 꼭 행복한 삶은 아니라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내게 있어 정돈은 ‘시작점’이다. 어지러운 방 안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내가 청소를 끝낸 후, 차분하게 일기를 쓰고, 독서를 시작하고, 마음을 돌볼 수 있게 되는 걸 보면 말이다. 삶은 거창한 변화보다 작은 루틴에서 시작된다.

 

오늘은 일기를 쓰기로 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나는 얼마나 지쳤고, 무엇에 감동했고, 어떤 말을 곱씹었는지 천천히 적었다. 글자로 적어 내려가다 보면 비로소 내가 어떤 상태였는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깨닫는다. 내가 생각보다 꽤 괜찮게 살아내고 있었다는 걸.

 

어쩌면 우리는 누구나 마음속에 지저분한 방 하나씩을 가지고 살아간다. 정리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결국 삶 전체가 무거워진다. 그래서 가끔은 청소가 필요하다. 먼지를 털어내고, 창문을 열어 환기하고, 필요 없는 물건을 버리듯 불필요한 감정을 정리하는 것. 그렇게 다시 시작하면 된다.

이제 다시 한 주가 시작된다. 방은 말끔히 정리되었고, 내 마음도 조금은 가벼워졌다. 완벽하진 않아도 된다. 다만 ‘지금의 나’를 돌볼 수 있는 능력을 조금씩 회복해가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청소를 하면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결국 삶도 마음도 ‘치우고, 다시 채워가며’ 사는 것이라는 단순한 진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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