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터널스 – 마블의 실험과 인간성에 대한 새로운 시선
‘이터널스’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에서 가장 이질적인 작품이다. 빠른 전개와 유쾌한 유머, 화려한 액션으로 대표되던 마블 스타일에서 벗어나, 존재론적 질문과 인간성에 대한 고찰을 중심에 두었다. 이는 클로이 자오 감독의 철학적 연출과 무관하지 않다. ‘노매드랜드’에서 보여준 잔잔하고 넓은 시선은 ‘이터널스’에서도 유효하다.
영화는 수천 년 전부터 지구에 존재해 온 초월적 존재 ‘이터널스’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들은 인간을 지키는 임무를 부여받았지만, 그들의 존재 이유와 자유의지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 이터널스는 슈퍼히어로이지만 동시에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고뇌를 가진 존재들이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선과 악의 싸움이 아닌, ‘창조와 파괴’, ‘운명과 선택’ 사이의 충돌을 다룬다는 점이다. 캐릭터들은 모두 저마다의 신념을 가지고 있고, 그 신념이 충돌할 때 우리는 선악의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특히 아이작과 세르시의 관계, 드루이그의 이상주의적 태도, 안젤리나 졸리의 ‘테나’가 겪는 기억의 혼란은 인간 존재에 대한 은유처럼 다가온다.
이 영화는 시각적으로도 독특하다. 자연광을 최대한 활용한 촬영, 압도적인 풍경, 고요한 롱테이크는 마블 특유의 화려한 CG와는 다른 감동을 전한다. 액션보다는 침묵과 시선, 감정의 누적을 통해 이야기가 흘러간다.
그렇기에 ‘이터널스’는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다. 전통적인 히어로 무비의 규칙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실험은 의미 있다. 마블이 스스로를 확장하며, 히어로라는 틀 안에서 인간이라는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