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느릿한 하루의 기록
아침부터 창밖에서는 빗소리가 조용히 이어지고 있었다. 잠결에 들려오는 일정한 빗소리는 나를 조금 더 이불 속에 붙잡아두었다. 보통 같았으면 기상 알람과 동시에 허둥지둥 일어나 아침을 챙기고, 출근 준비를 하느라 분주했을 테지만 오늘은 재택근무라 여유가 있었다. 침대에 누워 빗소리를 귀에 담으며 느리게 하루를 시작했다.
빗소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는 힘이 있다. 괜히 평소엔 신경 쓰지 못했던 감정들, 기억들, 스스로의 목소리가 천천히 떠오른다. 머릿속이 조용해지고, 무엇이 중요한지 다시 정리하게 되는 날. 커피포트를 올리고 원두를 갈아 향긋한 커피 한 잔을 내렸다. 손에 닿는 머그컵의 따뜻함이 참 좋았다.
노트북을 켜고 업무를 시작했지만 집중은 잘 되지 않았다. 비 때문인지 머리가 몽글몽글하고, 감성적인 기분이 더 앞섰다. 그래도 회의에 들어가고, 메일을 보내고, 문서를 정리하면서 하루를 꿋꿋이 채워나갔다. 중간중간 창밖을 보며 우산을 쓰고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저런 시간들을 살았지, 하고 중얼거렸다.
저녁이 되어 업무를 마치고 간단히 된장찌개를 끓였다. 혼자 먹는 밥이지만, 따뜻한 국물이 있는 식사는 혼자서도 위로가 된다. 밥을 먹으며 오래된 드라마를 틀어두고, 마음을 비워내듯 넋을 놓고 봤다. 가끔은 의미 없는 시간도 필요하다.
비는 밤까지도 그쳤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 빗소리를 배경으로 일기를 쓴다. 아무 일도 없었지만, 조용히 나를 만나는 하루였다. 이런 하루도 충분히 의미 있었다. 감정이 찬찬히 스며드는 오늘 같은 날, 나 자신에게 조금 더 다정할 수 있었다.